휴가 5일차.
원래 일정은 오전에 밑반찬을 좀 만들어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전날 저녁에 외삼촌께 전화가 왔다.
엄마의 사촌 오빠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가셔야 한다시며 '널 어쩐다니' 라신다.
여기. 촌이다. 버스를 본 적이 있긴 하던가? 나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는 차도녀;
엄마 안계시면 옴쭉달싹도 못하는 신세인데...
근데 장례식장이 정읍이다.
...
정읍에는 D가 휴가차 내려가 있지....
전화해보니 오늘 올라가려 했었다며 일정을 맞춰주기로 했다.
진안 갔다가 금산 갔다가 무주 갔다가 전주 갔다가 정읍가는겨?
아놔;;;;; 진짜 전북일주;;;
...
근데 전날 대화하며 좀 과음하셨던지 엄마가 못 일어나신다.
겨우겨우 깨워드리고 음료수 등을 챙겨드리며 정읍으로 출발.
가시는 내내 우웁;;; 후;; 우웁;;; 후;;;를 연발하시는 엄마.
엄마 미안.. 운전도 못하는 딸년때문에 숙취를 끌어안고 운전하시게 하다니...
그래서 나는 옆에서 계속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만 연발.
(이래서 면허를 안따요. 으흐흐)
여하튼 정읍으로 진입, 시파 앞에서 D와 합류.
내장산에 가고싶어 했는데, 이렇게 가게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일단 배를 채우고 이동하기로 했다.
시파는 '시기동 파출소'의 줄임말로,
나름의 정읍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
그 앞을 기웃거리면 근무하던 경찰 아저씨랑 눈도 마주치고 뻘쭘해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가보니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암뽕순댓국이 맛있는 화순옥과 해장쑥국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정읍살 땐 있는지도 몰랐던 충남집 사이에서 갈등.
'암뽕'이라는 단어에 =_= 이런 표정이 된 D놈을 데리고 충남집으로 ㄱㄱ
딱 보기에도 오래 돼 보이고 허름하다.
하지만 어쩐지 잘 닦여진 느낌이 드는 작고 깔끔한, 내 마음에 쏙 들던 주방.
해장쑥국과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쑥국쪽이 시원하고 개운하니 맛있었다.
콩나물국밥은 그냥 평이한 수준.
쑥국이 너무 맛있어서 D에게 먹어보라며 그릇을 바꿔줬다.
나는 쑥국이 더 맛있었지만 그냥 참고 콩나물국밥을 먹었는데
D는 콩나물국밥이 더 맛있었다고 했다.
그런건 진작 말하란 말이야. -_- 왜 둘 다 맛없는 편을 먹어야 했던거냐고. -_-
여하튼 시원하니 먹고 내장산으로 출발.
산행의 재미는 조록조록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는 맛.
마셔도 될 것 같이 깨끗한 물.
가는길에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다.
고등학교의 기억은 별로 많지 않다. 더럽게 아팠던 기억 밖에.
학교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의외로 고교동창들은 내가 아팠던 사실도 모르더라.
조퇴도 지각도 결석도 그렇게 많았는데.
역시 사람들은 자신의 일 외엔 관심이 없다.
산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늘 좋다.
어릴적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날이면 내장산으로 가 숲길을 한참 걸었다.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긴 후 부터는 백양산으로 가 백양사로 이어진 길 가운데 있는
벤치 하나를 찜해두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내장산으로 가려면 시내버스비만 있으면 되지만, 백양산으로 가려면 고속버스비가 있어야한다. ㅋ)
특히 가을볕이 쨍하고 대기가 낙엽냄새로 어지러울 땐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봄, 그 곳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더 없이 행복했었지.
97년 봄의 백양사는 내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으니까...
나무그늘이 우거져 해가 닿지 못하고 습습하게 이끼낀 길을 걸으면
서늘한 땀, 거칠어지는 호흡, 가벼운 갈증.
어느 순간 귀가 먹먹해지며 내 숨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에
온다. 그가.
에에에에엥
쨔악;
긴 장마에 서울선 보기 힘들었던 모기를
내장산에서 온몸으로 반겨주심.
ㅆ.....
두시간 가량의 등산로로 올라가려 했으나 초입에서 공원관리자 아저씨를 만나
'얼마전의 큰 비로 도로가 많이 유실되었고 쓰러진 나무의 잔해가 많아 그 신발로 걷기는 절대 무리다.
고생하지 말고 편한 길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백련암쪽은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래서 올라가는 길은 괜찮다'고 하신다.
진로 급변경.
이리 멋진 연못도 있으심.
님 짱이심.
날이 매우 덥고 습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제법 우거진 숲은 서늘했지만, 역시 몸 움직이는 데에는 장사가 없다.
빛이 깊이 미치지 않아 습도가 높으니, 땀도 양이 많다.
쪼로록 흐르는 소리마저 들릴 판.
산에서 내려와 정읍 시내로 들어선다.
거리는 변한게 없으나, 가게는 많이 변했더라.
하릴없이 희선양과 팔짱을 끼고,
웃고, 웃고, 웃다가 거리를 구를듯 주저앉아 끄윽끄윽대며 웃던 그 길을 짚어 걸었다.
여기는 누구와 자주 밥을 먹던 곳, 여기는 시험이 끝나면 쫄면을 먹으러 드나들던 분식집...
그리고 그 궤도도 끝에, '개미사'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이번이 두번째다.
약 4,5년 전 졸업후 처음으로 그 곳에 갔을 땐 여사장님은 안계셨다.
멀리서 눈으로 가게를 만지작거리다 돌아섰다.
이번에는 혹시, 하며 빼꼼 고개를 들이미니 여사장님이 계신다.
10여 년만이다.
서점에 음악잡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신보 리스트를 보고 종이에 적어가 달려가면
개미사 여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받아서 주문을 해주셨다.
좋은 앨범이 나오면 먼저 권해주기도 하셨고, 크리스마스 등에는 앨범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특히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한 앨범을 자주 선물로 주셨고, 그 이후에는 콘템퍼러리나 모던재즈쪽 앨범을 주셔서
음악성향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개미사에서 나와 그러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D에게 하며
시장으로 간다.
꺄아
좋아하는 시장구경 시장구경!
당초 울외장아찌를 살 목적으로 찾아갔지만, 막상 울외를 마주하니 이놈을 들고갈 자신이 없어졌다.
새우젓 한통과 향이 진동을 하는 생강 한 무더기를 샀다.
어릴적 자전거 타고 장 보러 다니던 시장.
규모가 꽤 크다.
길거리 와글와글한 분위기가 좀 더 좋긴 하지만
외면받는 재래시장의 정비사업 일환으로 뚜껑을 다 닫아놨다.
위생상으로는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난 왠지 모자나 우산도 쓰는 게 싫을 정도로
머리 위가 닫혀있는게 별로란 말이지...
시장을 둘러보고, 어릴적 살던 집 근처 등을 둘러보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끊는다.
별 돈 안들이고 고생도 별로 안한 그저 그런 휴가였지만,
그야말로 푹 잘 쉬고 잘 놀고, 늘 그립던 곳도 들를 수 있었던 나름 '알찬'휴가였던 듯.
하아 이상 휴가 일지 끝.
원래 일정은 오전에 밑반찬을 좀 만들어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전날 저녁에 외삼촌께 전화가 왔다.
엄마의 사촌 오빠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가셔야 한다시며 '널 어쩐다니' 라신다.
여기. 촌이다. 버스를 본 적이 있긴 하던가? 나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는 차도녀;
엄마 안계시면 옴쭉달싹도 못하는 신세인데...
근데 장례식장이 정읍이다.
...
정읍에는 D가 휴가차 내려가 있지....
전화해보니 오늘 올라가려 했었다며 일정을 맞춰주기로 했다.
진안 갔다가 금산 갔다가 무주 갔다가 전주 갔다가 정읍가는겨?
아놔;;;;; 진짜 전북일주;;;
...
근데 전날 대화하며 좀 과음하셨던지 엄마가 못 일어나신다.
겨우겨우 깨워드리고 음료수 등을 챙겨드리며 정읍으로 출발.
가시는 내내 우웁;;; 후;; 우웁;;; 후;;;를 연발하시는 엄마.
엄마 미안.. 운전도 못하는 딸년때문에 숙취를 끌어안고 운전하시게 하다니...
그래서 나는 옆에서 계속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만 연발.
(이래서 면허를 안따요. 으흐흐)
여하튼 정읍으로 진입, 시파 앞에서 D와 합류.
내장산에 가고싶어 했는데, 이렇게 가게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일단 배를 채우고 이동하기로 했다.
시파는 '시기동 파출소'의 줄임말로,
나름의 정읍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
그 앞을 기웃거리면 근무하던 경찰 아저씨랑 눈도 마주치고 뻘쭘해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가보니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암뽕순댓국이 맛있는 화순옥과 해장쑥국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정읍살 땐 있는지도 몰랐던 충남집 사이에서 갈등.
'암뽕'이라는 단어에 =_= 이런 표정이 된 D놈을 데리고 충남집으로 ㄱㄱ
딱 보기에도 오래 돼 보이고 허름하다.
하지만 어쩐지 잘 닦여진 느낌이 드는 작고 깔끔한, 내 마음에 쏙 들던 주방.
해장쑥국과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쑥국쪽이 시원하고 개운하니 맛있었다.
콩나물국밥은 그냥 평이한 수준.
쑥국이 너무 맛있어서 D에게 먹어보라며 그릇을 바꿔줬다.
나는 쑥국이 더 맛있었지만 그냥 참고 콩나물국밥을 먹었는데
D는 콩나물국밥이 더 맛있었다고 했다.
그런건 진작 말하란 말이야. -_- 왜 둘 다 맛없는 편을 먹어야 했던거냐고. -_-
여하튼 시원하니 먹고 내장산으로 출발.
산행의 재미는 조록조록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는 맛.
마셔도 될 것 같이 깨끗한 물.
가는길에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다.
고등학교의 기억은 별로 많지 않다. 더럽게 아팠던 기억 밖에.
학교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의외로 고교동창들은 내가 아팠던 사실도 모르더라.
조퇴도 지각도 결석도 그렇게 많았는데.
역시 사람들은 자신의 일 외엔 관심이 없다.
숲길의 흔한 '단풍 무늬 블럭'
산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늘 좋다.
어릴적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날이면 내장산으로 가 숲길을 한참 걸었다.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긴 후 부터는 백양산으로 가 백양사로 이어진 길 가운데 있는
벤치 하나를 찜해두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내장산으로 가려면 시내버스비만 있으면 되지만, 백양산으로 가려면 고속버스비가 있어야한다. ㅋ)
특히 가을볕이 쨍하고 대기가 낙엽냄새로 어지러울 땐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봄, 그 곳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면 더 없이 행복했었지.
97년 봄의 백양사는 내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으니까...
나무그늘이 우거져 해가 닿지 못하고 습습하게 이끼낀 길을 걸으면
서늘한 땀, 거칠어지는 호흡, 가벼운 갈증.
어느 순간 귀가 먹먹해지며 내 숨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에
온다. 그가.
에에에에엥
쨔악;
긴 장마에 서울선 보기 힘들었던 모기를
내장산에서 온몸으로 반겨주심.
ㅆ.....
두시간 가량의 등산로로 올라가려 했으나 초입에서 공원관리자 아저씨를 만나
'얼마전의 큰 비로 도로가 많이 유실되었고 쓰러진 나무의 잔해가 많아 그 신발로 걷기는 절대 무리다.
고생하지 말고 편한 길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백련암쪽은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래서 올라가는 길은 괜찮다'고 하신다.
진로 급변경.
이리 멋진 연못도 있으심.
님 짱이심.
날이 매우 덥고 습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제법 우거진 숲은 서늘했지만, 역시 몸 움직이는 데에는 장사가 없다.
빛이 깊이 미치지 않아 습도가 높으니, 땀도 양이 많다.
쪼로록 흐르는 소리마저 들릴 판.
산에서 내려와 정읍 시내로 들어선다.
거리는 변한게 없으나, 가게는 많이 변했더라.
어린날, 게걸스럽게 활자를 탐하던 서점은 옷가게로 바뀌었다. 덩그러니 간판만 남겨둔 채.
하릴없이 희선양과 팔짱을 끼고,
웃고, 웃고, 웃다가 거리를 구를듯 주저앉아 끄윽끄윽대며 웃던 그 길을 짚어 걸었다.
여기는 누구와 자주 밥을 먹던 곳, 여기는 시험이 끝나면 쫄면을 먹으러 드나들던 분식집...
블루 하와이'를 마시러 자주 갔던, 좁은 골목 깊숙한 곳의 카페
그리고 그 궤도도 끝에, '개미사'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이번이 두번째다.
약 4,5년 전 졸업후 처음으로 그 곳에 갔을 땐 여사장님은 안계셨다.
멀리서 눈으로 가게를 만지작거리다 돌아섰다.
이번에는 혹시, 하며 빼꼼 고개를 들이미니 여사장님이 계신다.
10여 년만이다.
서점에 음악잡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신보 리스트를 보고 종이에 적어가 달려가면
개미사 여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받아서 주문을 해주셨다.
좋은 앨범이 나오면 먼저 권해주기도 하셨고, 크리스마스 등에는 앨범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특히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한 앨범을 자주 선물로 주셨고, 그 이후에는 콘템퍼러리나 모던재즈쪽 앨범을 주셔서
음악성향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개미사에서 나와 그러했던 과거의 이야기를 D에게 하며
시장으로 간다.
꺄아
좋아하는 시장구경 시장구경!
당초 울외장아찌를 살 목적으로 찾아갔지만, 막상 울외를 마주하니 이놈을 들고갈 자신이 없어졌다.
새우젓 한통과 향이 진동을 하는 생강 한 무더기를 샀다.
어릴적 자전거 타고 장 보러 다니던 시장.
규모가 꽤 크다.
길거리 와글와글한 분위기가 좀 더 좋긴 하지만
외면받는 재래시장의 정비사업 일환으로 뚜껑을 다 닫아놨다.
위생상으로는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난 왠지 모자나 우산도 쓰는 게 싫을 정도로
머리 위가 닫혀있는게 별로란 말이지...
시장을 둘러보고, 어릴적 살던 집 근처 등을 둘러보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끊는다.
별 돈 안들이고 고생도 별로 안한 그저 그런 휴가였지만,
그야말로 푹 잘 쉬고 잘 놀고, 늘 그립던 곳도 들를 수 있었던 나름 '알찬'휴가였던 듯.
하아 이상 휴가 일지 끝.